0418 자기중심
20260418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면 안 된다.
유명한 소설의 첫 문장이 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네가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 이 말을 기억하렴.
세상 모든 사람이 너만큼 유리하지 않다는 것을'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남에게 존중받고 싶다면, 나 먼저 존중해야 한다.
남이 폐를 끼치는 것이 싫다면, 나 역시 폐를 끼치면 안 된다.
난 이런 생각은 흔히 말하는 '공감'과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남의 입장으로써 생각해 보는 것.
나라면 어땠을까. 남을 이해해 보자. 같은 눈높이에서 생각해 보자.
이런 게 공감이라면,
저 마인드는 약간 이런 거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내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싫은 건 상대도 싫을 것이다"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분명 내게 불이익이 있을 게 뻔하다"
즉 자신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제는 '내가 싫어하는 것' 은 내가 정한다.
내 의식을 중심으로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피하고 싶은 것. 궁금한 것. 배워야 할 것. 평생을 함께한 것.
등등 수많은 정체성이 생겨 있다.
사람은 모두 각기 다른 세계를 본다.
겉으로는 똑같이 생긴 세상이지만,
그날의 기분. 과거의 추억. 기대. 희망. 트라우마. 건강 상태.
셀 수 없는 변수들이 조합되어
그 사람만의 세계를 만든다.
난 이걸 보통 맥락(context)이라고도 부른다.
상대의 세계가 자신의 세계와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상대를 무시하고,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 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
맥락을 파악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나는 몇 년을 알고 지낸 친구의 맥락도 예상하기 어렵다.
평생을 알고 지냈다고 해도 어려울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 사람이 만들어낸 관점, 입장, 세계관은
살아온 시간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 자체만으로 고귀하고 가치가 있다.
그렇게 자신만의 관점을 강요하는 걸
요즘말로 꼰대 내지는 개똥철학이라고 한다.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고,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는 건
물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타인의 세계를 거부하며 살다 보면,
자신의 세계 속에 끝없이 갇히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인간은 자신의 성장이 멈춰가고 있음을
몸으로 뼈저리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