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4 타인 비난하기

20260504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어떤 부류의 인간을 축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말이다.

나는 저 말이 매우 싫다.


뭐 대충 그런 상황을 한번 가정해 보자.

한 인간이 지인의 크나큰 불행을 듣고,

희열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

이 상황이 흥미로운 이유는,

앞에서의 상황, 즉 '문맥'과

미래에 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저 상황에는 매우 많은 사실들이 함축되어 있다.

저 인간의 기준에서 생각해 보자.

그 말을 전해듣고, 즉시 생각했다고 가정해보자.

  • 나만 아니면 된다
  • 나는 그렇지 않으니, 너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다
  • 그런 불행이 닥쳤으니, 너는 앞으로 잘 살아가지 못한다
  • 만일 잘 살아가더라도, 저런 과거를 숨길 순 없다
  • 저런 과거가 있으니, 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 만일 과거를 숨긴 채 극복해도, 나는 너의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
  •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완벽해질 수 없다
  • 너에게는 자칫하면 나락으로 멀어지는 약점이 생긴 것이다

일단 이렇게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좀 오버해서 적긴 했는데,

대충 심한 경우 저럴 수 있다는 걸

써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저렇게 예민한 생각을

어떻게 하게 된 것일까?

가장 큰 문제는 '건강하지 못한 목표의식' 이다.

쉽게 말해 열등감이다.


다시 돌아와서.

옛날에 이러한 글을 봤던 기억이 있다.

"가장 값싼 자존감 회복 방법은, 남을 비난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된다'

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어한다.

'여기' 가 가정이던, 학교던, 회사이던 간에

소속감은 인간의 정신 유지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소속감을 느낄 때 개인의 매우 큰 안정감으로 이어짐과 동시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할 때의 개인은

무력감을 느끼고, 남의 시선과 말들에 취약해진다.

안타까운 사실은,

인간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자존감이 낮아지는 현상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개인으로써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자존감이 낮아진 인간이 가장 흔히 하는 행동이 무엇일까?

내가 가장 많이 본 사례는

자신을 만만한 남과 비교하는 것이다.

타인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이 비아냥대고,

나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왜 그런 호구짓을 해서 사서 고생을 하냐.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했냐.

지금까지 개판으로 살아왔구나. 인과응보다.

물론 일방적인 비난에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맥락 따위는 고려되지 않는다.

그렇게 비웃고

"내가 쟤보다는 낫지"

하면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이 문장은 진리이다.

변하지 않는다. 몇 세기가 지나도,

사람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

나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나와 타인의 구별'은 흔하게 봐 왔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나는 이렇고, 너는 이러하니까 내가 더 나은 사람이야'

대충 이런 구조다.

저게 두 사람만 있었다면 별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세 명, 네 명...

그렇게 작은 모임에서 커다란 사회로 확장되면

동일한 인간들, 즉 또다른 한 집단에 대해서

'우리 집단은 이렇고, 너희 집단은 이러하니까 우리가 더 나은 집단이야'

이렇게 된다.

이건 억지로 이름붙이면

사회 간의 구별이겠다.

이게 심해져서 어떤 집단에게만 이익이 있거나

반대로 어떤 집단에게만 불이익이 있다면

그건 사회 간의 차별일 것이다.

가장 무서운 건,

그게 아니다.


사회같이, 스케일 자체가 방대하고

어느정도 양의 표본이 존재한다면

비로소 통계의 의미가 생겨난다.

이를 통해서,

  • 어떤 집단이
  • 어떠한 이유로
  • 이런 불이익을 받는다

라는 것을 한눈에 쉽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개개인 간의

소규모 네트워크에서는?

감지 자체가 매우 어렵다.

분위기를 읽는 것도

개인이 경험한 바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암묵적이고, 일시적인 눈빛에 의한 구분은

평생을 모른 채로 살아갈 수도 있다.


건강하지 못한 목표의식이 뭘까?

목표의식이 건강한가, 건강하지 않는가를 구분짓는

가장 큰 기준은

초점, 즉 비교군을 다른 사람들에 두는가?

또는 자기 자신에 두는가?

이다.

비교군을 다른 사람들에게 두는 경우,

  • 저런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
  • 이정도면 특정 집단보다는 우위에 있다

이런 것에 중점을 두게 된다.

항상 저런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되면,

흔히 말하는 '성공의 조건' 을

남들에게서 빌려오게 된다.

  • 돈이 이정도 있으면 성공한 인생이다
  • 어느 직업을 가지면 성공한 인생이다
  • 남들이 보기에 이러하면 성공한 인생이다

뭐 대충 이런 거다.

분명 저러한 말들이 떠도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몇십 년간 누적되어온, 사람들 사이에서의 경험이

저런 말들을 만들었을 것이고,

이는 확실히 적절하다.

다수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니, 분명

제네릭하게 적용될 수 있는 조건들일 것이다.

나는 저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은

자아실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조건, 즉

"개인적인" 목표를 찾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디서 들어본 말을 빌리자면,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한 개인의 진정한 행복으로도 이어지는,

인생 자체에서의 중대한 과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건강한 목표의식을 가지려면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비교를 해야 한다면 자기 자신과 비교해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더 발전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내 기분도 덩달아 나빠지고,

선악을 구분짓는 부분에서

내가 혹여나 악이 된 적은 없었을까 -

하고 초조해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들어온 생각이,

세상의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부분만 고려하고

속에서 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애써 무시하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감정들은 쌓이고, 쌓여서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한 인간의 자아를 완전히 물들여버리기도 한다.

정말 심하면 사회 전체의 몰락이 일어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공명'이란 표현이 있지 않는가?

주변 사람이 하는 말. 행동.

요즘 유행하는 것들.

그런 걸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되는 것.

이는 부정적인 것에도 적용된다.

부모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

세상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나라도 내 아이가 악에 물들지 않도록 이끌어주고 싶다.

그런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올바른 정신이다.

내 생각엔, 명심해야 하는건

선악을 구별하는 힘이다.

최소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세상의 어두운 면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또한,

이 마인드를 나를 둘러싼 세상에만 제한하지 말고,

자기 자신 에게도 확장시켜서?

'건강하지 않는 감정' 들을

빠르게 인지하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태도는 말만큼 쉽지가 않다.

아까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은

진리라고 하였다.

수많은 장점과 단점들이

저 진리에서 파생된다.

또,

이런 이야기들은 너무나 이론적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도,

"진정으로 내가 하고싶은 것을 찾아봐요" 라고 하면서

무엇을 하는 게 좋은지를 종이에 써 보는

활동을 하던 게 기억난다.

그 때는 그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건지 몰랐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