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is Clos
Huis Clos (닫힌 방)
장 폴 사르트르
민음사
지영래 옮김
Quote
세 사람 각자에게 지옥이란
나머지 두 사람의 시선 그 자체이다.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책은 타자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다.
그에게 문학은 지옥과 반대되는 말이다.
13p
[가르생] (그를 쳐다보며)
"아? 아, 그렇군요. 아니오. 웃길 마음은 없었습니다. (잠시 침묵, 그는 서성댄다.) 거울도 없고, 창문도 없고, 당연히. 깨질 것은 하나도 없군. (갑자기 난폭하게) 그런데 내 칫솔은 왜 빼앗은 거요?"
[급사]
"그럴 줄 알았어요, 인간의 존엄성이 되살아난 게지요. 참 대단하시군요."
[가르생] (화가 치민 듯 안락의자의 팔걸이를 내리치며)
"너무 함부로 말하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참기 힘들군요. 당신이..."
[급사]
"알았어요, 알았어,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모든 손님들이 똑같은 질문을 해 대는데. 그들은 도착하면 '쇠꼬챙이들은 어디 있어요?' 라고 합니다. 그 순간엔, 단언하지만, 그들은 세수 같은 건 생각도 못 하는 거죠. 그러나 일단 안심을 하고 나면 바로 칫솔 얘기를 꺼내더군요. 아니, 제발 생각 좀 할 수 없습니까? 한번 물어봅시다, 도대체 왜 이를 닦겠다는 겁니까?"
[가르생] (진정하고서)
"하긴 그렇군요, 왜일까요?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 왜 거울은 들여다보는 걸까요? 청동상만 해도 일찌감치... 언젠가는 내가 저것을 두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볼 때가 있을 거요. 내 이 두 눈으로 말이요, 알겠소? 좋아요, 좋아, 아무것도 숨길 것 없어요. 말씀드리지만 나는 내 처지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 얘기해 드릴까요?
그자가 숨이 막혀 꼬꾸라지더니, 물에 빠져 죽고, 그의 시선만 물 밖으로 나와 있는 거죠. 그런데 그의 눈에 뭐가 보이는지 아십니까?
바르브디엔의 청동상이 보이는 거죠. 얼마나 끔찍한 악몽입니까! 좋아요, 아마도 나한테 대답해주지 말라고들 했을 테니,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내가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잡힌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마시오. 나를 놀라게 했다고 우쭐대지 말란 말이죠. 난 내 처지를 직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러니까, 칫솔은 없군요. 침대도 물론 없고. 왜냐하면 자는 일도 없을 테니까, 당연히?"
[급사]
"그럼요."
[가르생]
"그럴 줄 알았다니까, 왜 자겠어요? 잠이 귀 뒤쪽에서 밀려오기야 하겠지요. 당신은 두 눈이 감기는 것을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왜 자요? 소파에 드러누우면 바로 휙... 잠이 달아나는데.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일어나야 하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는 거지요."
[급사]
"소설 잘 쓰시네요."
[가르생]
"조용히 해 봐요. 나는 소리 지르지도 않을 거고, 신음하지도 않을겁니다. (...) 잠깐만, 그런데 그게 왜 고통스럽지? 왜 그게 꼭 고통스럽다는 거지? 알았다, 그러니까 단절 없는 생활이라는 거군요."
[급사]
"무슨 단절이오?"
[가르생] (그를 흉내 내며)
"무슨 단절이오? (수상쩍어하며) 나를 좀 쳐나봐요. 내 그럴 줄 알았지! 당신 눈초리가 견딜 수 없이 거칠고 무례하더만 이제야 알겠군, 이거 봐, 쪼그라들어서 없잖아."
[급사]
"무슨 소립니까?"
[가르생]
"당신 눈꺼풀 말이오. 우린, 우리는 원래 눈꺼풀을 깜빡거렸지요. 눈 깜빡한다는 말도 있잖아요. 순간적인 검은 번개, 장막이 한 번 내려왔다가 올라가면 단절이 일어나지요. 눈은 촉촉해지고, 세상은 없어집니다. 그게 얼마나 생기를 돋웠는지 당신은 알리 없지요. (...)"
23p
(가르생이 일어나서 그녀에게로 간다.)
[가르생]
"당신은 겁나지 않나요, 당신은?"
[이네스]
"그래 봐야 어쩌겠어요? '겁'이라는 것, 예전엔 유익했죠. 우리가 희망을 품고 있었을 때는."
[가르생] (부드럽게)
"이제 더 희망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예전에 있는 겁니다. 아직은 고통이 시작되지 않았으니까요, 아가씨."
[이네스]
"알아요. (사이) 그러면요? 무슨 일이 일어날 거죠?"
[가르생]
"몰라요, 나도 기다리는 중입니다."
26p
[에스텔]
"저요? 어제였죠. 아직 장례식도 안 끝났어요.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마치 말로 묘사하는 내용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 하다)
바람이 내 동생의 베일을 흩날려요. 울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네요.
자, 자! 조금만 더 해 봐. 잘했어. 두 방울, 작은 눈물 두 방울이 베일 안에서 반짝이네요.
올가 자르데는 오늘 아침엔 너무 밉군요. 그녀가 내 동생을 부축하고 있어요.
눈 화장 때문에 안 울고 있는데, 내가 그녀 입장이었다면 그럴 수 -
... 내 가장 친한 친구였거든요."
[이네스]
"많이 고생했습니까?"
[에스텔]
"아니오, 오히려 정신이 멍멍했어요."
[이네스]
"무슨 일을...?"
[에스텔]
"폐렴이었어요. (조금 전과 똑같은 태도로)
자, 이제 다 됐어, 그들이 가는군.
안녕히 가세요! 안녕히 가셰요!
무슨 악수를 이렇게 많이 한담, 내 남편은 슬픔으로 병이 나서
집에 남아 있어요. (이네스에게) 당신은요?"
[이네스]
"가스 사고였죠."
[에스텔]
"남자분께선요?"
[가스생]
"총살당했소. 총알 열두 발. (에스텔의 놀란 몸짓) 미안합니다, 내가 품위 있는 사망자는 아니죠."
31p
[에스텔]
"그렇다면 당신 말이 딱 맞군요, 우리가 여기 같이 있는 건 우연이네요."
[이네스]
"우연이라, 그렇다면 이 가구들도 우연히 여기 있는 거네요. 오른쪽에 있는 장의자가 짙은 녹색이고 왼쪽 의자가 진홍색인 것도 우연에 의한 것이고. 한낱 우연. 그거라 말이죠? 그럼 이제 그것들 자리를 바꿔 보고 나서 나한테 또 소식을 알려 줘 보세요. 저기 저 청동상은, 그것도 우연인가요? 그리고 이 더위는? 이 더위는요? (침묵) 그들은 모든 것들을 다 계산해 놓은 거에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애정을 담아서 말이에요. 이 방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
[에스텔]
"당신, 바로 당신이 내 앞에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거에요? (사이) 그들은 뭘 기다리는 거지요?"
[이네스]
"나도 모르죠, 하지만 그들은 기다립니다."
(...)
[가르생] (갑작스레 이네스에게)
"그래서, 왜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겁니까? 말을 많이 하셨으니 어디 끝까지 가 보죠."
[이네스] (놀라며)
"아니, 난 전혀 아는 바가 없는걸요."
[가스생]
"아셔야만 합니다."
(그는 잠시 생각한다.)
[이네스]
"만일 우리 각자에게 말할 용기만 있다면..."
[가르생]
"뭘요?"
[이네스]
"에스텔!"
[에스텔]
"네?"
[이네스]
"당신은 뭘 했어요? 그들이 왜 당신을 여기로 보낸 거죠?"
[애스텔] (활기를 띄며)
"글쎄, 나도 모르겠어요, 전혀 모르겠어요! 혹시 실수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어요.
(...)
우리가 실수로 여기 있다고 믿는 게 더 낫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