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모모

미하엘 엔데

비룡소

한미희 옮김


그는 일을 끝내고 모모 옆에 앉아 그런 생각을 들려주곤 했다.

모모가 특유의 방식으로 열심히 들어 주기 때문에

그럴 때면 베포의 굳었던 혀도 풀려서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베포는 이렇게 얘기했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고는 한참 동안 묵묵히 앞만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러고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게 중요한 거야.”


그는 회색 신사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그러니 그 시간들이 지금 어디로 갔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런 질문은 하지 않았다.

푸지 씨는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고 점점 더 빨리 흘러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라도 하면,

기겁해서 이를 악물고 더욱 더 시간을 아껴 쓰는 것이었다.

대도시에는 어느새 푸지 씨와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

하긴 시간을 아끼는 사람들이 옛 원형극장 인근 마을 사람들보다 옷을 잘 입긴 했다.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에 더 많이 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무언가 못마땅한 기색이나 피곤함,

또는 불만이 진득하게 배어 있었다.

눈빛에는 상냥한 기미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물론 그들은 “아무튼 모모에게 가 보게!” 와 같은 말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말을 온 마음으로 들어 주는 사람,

말하다 보면 저절로 분별이 생기고, 화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분까지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5분 안에 일을 끝낼 수 있다면 모를까,

그들이 그 사람을 찾아갈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5분 안에 끝나지 않으면 그들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심지어 여가 시간까지도 알차게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주 빠른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즐거움과 휴식을 줄 수 있는 오락을 찾았다.

그랬기에 그들은 축제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즐거운 축제도 그랬고, 엄숙한 축제도 그랬다.

꿈을 꾸는 것은 죄악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것, 그것은 정적이었다.

사방이 고요하면, 그들은 자기네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러면 밀물처럼 불안이 밀려 왔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 모모는 어떤 거리에 서 있었다.

애타게 찾던 베포 할아버지를 만났던 골목길이었다.

그리고 정말 그곳에는 베포 할아버지가 서 있었다!

베포 할아버지는 모모에게 등을 돌린 채 빗자루에 몸을 기대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베포는 별안간 더는 마음이 급하지 않게 되었다.

어째서 불쑥 위안을 느끼게 되고

희망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지 스스로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 저축해야 할 10만 시간을 다 채워서 모모가 풀려난 모양이군.

베포는 이렇게 생각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꼬마 모모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재회의 기쁨을 묘사할 말은 아마 이 세상에는 없으리라.

두 사람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며 끝없이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다.

기쁨에 취한 사람들이 그러듯 온통 실없는 소리를 한 것이다.

두 사람은 몇 번이고 얼싸안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멈춰 서서 같이 기뻐해 주었다.

그들은 같이 웃고, 같이 울었다. 이제 모두들 그럴 시간이 있었다.